노아의 때, 롯의 때 (눅 17:26~30)
가을이 되면 참 아름답게 여겨 집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요?
첫째는 언제나 인생의 끝날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 끝날 사람들의 모습이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노아의 때와 롯의 때에 그 특징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27-28절)
창세기 6, 7장을 보면 노아 시대에는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으며(7:5) …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7:11,12)”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롯은 또 다른 종말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의 시대는 ‘패괴하며 추악하고 음란했다’고 증거합니다. 성안에서 그들의 가족이나 또는 그 성 사람들 간의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던 그들이, 그 성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들자 폭력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노아 당시 사람들의 멸망의 원인을 지적하시면서 그들시대의 타락상을 말씀하시지 않고 단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27절)” 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일상적인 삶에 바빠 인생의 종말과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오히려 성스럽기까지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가장 기본적인 삶의 모습으로 주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도 이상하다거나,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은 이 지극히 당연하고 일상적인 삶이 그들의 삶의 전부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만 생각하였고 개인이나 세상이든 거기에는 반드시 끝날이 있고 그리고 그 살아온 삶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고 일상적인 삶에 바빠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롯의 시대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는 행위’는 정말 필요한 것이고,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속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 역시도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느라고 개인의 종말인 죽음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개인의 종말과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둘째로 우리는 일상생활에 바빠 해야할 일을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노아시대와 롯의 시대 사람들은 시대를 바라보면서 종말의 징조도 보았겠고 자기자신을 살펴볼떼도 이렇게 살다가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지하며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집 짓는 삶에 바빠서 돌이킬 일을 뒤로 미루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를, 믿음생활을 자꾸 미루기만 하다가 멸망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멸망시키고 심판하시는 것을 즐겨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딤전2:4)
창 6장에 나오듯이 노아 홍수가 일어나기 전 사람들은 점점 포악해지고 가는 곳마다 폭력이 성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보시고는 사람 지으신 것을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이 노아 홍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고 120년이라는 유예 기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노아라는 의인을 전도자로 파송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기간동안 노아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은 구원하고, 끝까지 하나님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물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전도는 철저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자기 식구 외에는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당시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맘대로 죄를 범하던 사람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다 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소돔 고모라의 심판은 창세기 1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라는 두개의 작은 도시에 유례없이 성적 문란이 판을 치며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를 지켜보신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 성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금방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롯이라는 의인을 통해 그 성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수십 년 동안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식구 외에는 그를 통해 감화를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 성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때가 언제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미스터리와 같은 두 사건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재림이고, 또 하나는 우리 각자의 죽음입니다.
이것은 언제 우리에게 찾아올지 잘 모르지만 반드시 찾아 올 것입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먼저 올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둘 중 하나가 오면 우리에겐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를 믿지 않은 채 그 시간까지 미루고 거부한다면 절대로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내일이 없습니다. 오늘만이 내 날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나중에 믿겠다는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을 보면 아주 심각한 말씀이 나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