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본문: 빌립보서 3:7-9
(빌 3: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 3: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젊은 남녀가 요즘 많이 하는 SNS 를 통해 사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이제는 만나서 정식으로 데이트를 하면 어떻게냐는 것에 생각이 모아져서 만났는데 만나보니 남자가 어릴 때 실명을 해서 여자분이 약간을 실망을 해서 만나기전 신체적인 결함이 있으면 미리 알려주는게 예의인데 이렇게 갑자기 알게되서 당황스럽다고 말하자 남자는 자기가 처음 사귀기 시작할 때 말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냐고 오히려 화를 내더랍니다.
여성이 언제 그런적이 있느냐 물으니
내가 처음에 말했지 않았느냐, “한눈에 반했다고~”
예배에 오신 여러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오른손을 들어 눈에다 갖다 대세요
자 이제 옆에 계신 분이랑 인사하겠습니다.
“한눈에 반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네~ 사랑하는 맨하튼교회 성도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저는 과테말라 께찰데낭고(셀라)에서 전문인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배광열 선교사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선교사로 인준 받은 사람은 제 아내 Janice 선교사고 저는 선교사의 남편입니다.
저희교단에 평신도를 선교사로 인준해서 파송한 것이 저희 가정이 처음입니다.
혹시 오늘 전하는 하나님에 말씀중에 신학적으로 설교학적으로 심지어는 선교학에 비추어 잘 맞지 않더라도 성도님들이 많은 이해하시며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저를 선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한, 아니, 내가 선교사로써의 자격이 있을까 라는 불안함, 연약함, 겸손함 등등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으로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주님이 주신 위로의 말씀입니다.
7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여기서 바울에게 유익하던 것이 무엇일까요?
8절 앞절에 나오는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에서 모든 것은 바울이 자기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일상을 이야기 하는 것 아닙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던 모든 것은 의로움인데 그것을 그는 6절에 율법의 의로움으로 볼 때 흠이 없는 자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교회에 다닌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는 나의 생활에 일부가 아닌 전부였습니다.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냈고 한국에 있을때, 주일학교 교사와 중고등부 교사, 그리고 미국에서는 청년부담당 집사로, 휴스턴 한빛장로교회 소위 창립멤버로 그곳에서 결혼하고 그곳에서 자녀를 낳고 키우고 그들도 한빛교회에서 결혼할 정도로 많은 축복을 누렸고, 이민교회가 거처야하는 5번의 교회 이전과 3번의 교회 건축 그리고 교회에 모든 행사와 교회 성장 주심에 있었습니다.
20여명의 교인이 500명이 되어지는 기간에 5명의 목사님이 바뀌고 많은 성도님들이 오고 떠나갔지만 나의 삶은 모든 것이 교회로 중심으로 이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모든 것이 나의 의로움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의로움이 커져갈수록 교회와 성도와 목사님에 대한 허물은 더 커다랗게 나에게 보이기 시작했으나 그러나 내 스스로는 나의 신앙을 더욱 채찔질하며 예배 참석, 교회 봉사, 새벽기도 하며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져도… 존경하는 작은 형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또 다른 시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암울하고 어두운 상황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주님이 찿아오셨고 나를 일으켜 세운 말씀이 바로 오늘 이 말씀입니다.
7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오래전 2007년 아이들과 봄방학을 맞이하여 스키를 타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스키를 타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 왔는데 집에 남아 있던 큰아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지갑 잃어버렸어요?” “아니”,
“ 그런데 어떤분안데서 전화가 왔는데 아빠 지갑을 스키장에서 주웠데요” 어떤분이 제 지갑을 주워서 안에있던 명함을 보고 그 전화번호로 전화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에 본문에서 바울은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썼습니다.
구원은 자기 스스로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해야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라는 말씀은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죄인이 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시작은 창세기 3:22에서 시작됩니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4: 그사람을 쫒아내시고…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우리가 우리의 손을 들어 이루려고 하는 모든 것을 막으셨습니다.
사람의 죄악으로 인해 예덴동산에 쫒겨난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린 벌이 아니라 구원의 계획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인간은 다시 우리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원히 죄인의 몸으로 살아가야 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음 또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선교 또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어야 합니다.
저희가 선교지로 담대히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하신다는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가 선교를 떠날 때 커다란 계획이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과테말라에서 교회 집사로 교회 어린이 전도사로 현지인들과 같이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 반 동안 주님이 일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간증이고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