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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를 생각하라 12:22-31

 

(12: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12:23)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12:24)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12:25)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12:26)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12:29)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12:30)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12:31)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염려가 안 없으신 분 계시면 손들어 보십시오? 한분 계시군요

누구나 다 염려가 있으시다는 말이지요. 어려운 일을 당하면, 누구나 염려하게 됩니다. 어려운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으면 염려하지 않겠는데 세상일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보니 자연 어려운 일을 만나면 염려하게 됩니다. 염려스러운 일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오늘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당시는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의 모든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은 뭘 먹을까, 뭘 마실까, 뭘 입을까하는 의식주 문제였습니다.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족을 뒤로하고 주님을 따라 나선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따를때는 무슨 장관자리 하나라도 차지할 기대를 가졌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러실 것 같지는 않고 두고온 가족의 생활걱정도 되었습니다.

지난주일은 주님께서 너희는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과 교제에 부요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함으로 부요한 자가 되라는 말씀이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주님께서 우리의 가난한 형편을 너무 모르시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을 꽤뚫어 보시는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것인가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살다보면 염려꺼리가 생기게 되고 그러면 염려하게 되는 것이 자연적인데 왜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첫째, 염려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 25절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이 키가 작은 것 때문에 염려한다고 해서 키가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키가 작은 것 때문에 염려하는 것 자체가 아무 소득 없는,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펴보면 사람들이 키를 염려하는 것난이 아니라 지난 일을 염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데, 과거로 인해 염려하는 것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과거는 빨리 잊는 것이 좋습니다. 과거에 매이면, 현실을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고,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지금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한데, 과거에 매여 고민하며 허송세월하면 안 됩니다.

만일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기억하지도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말해주시겠다고 하셨고 만일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고, 그 후에는 잊는 것이 낫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내일 일을 미리 끌어다가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도 쓸데없는 염려입니다. 내일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일은 올지, 안 올지도 모릅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연장시켜주시고, 내일을 주셔야 내일이 나에게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일 일어날 일을 앞당겨 염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염려가 우리에게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염려하는 것이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지 모릅니다.

위가 건강하지 못하면, 소화가 잘되지 않고, 위장병에 걸립니다. 그런데 위장병의 80%는 마음이 불안하고, 염려할 때에 생깁니다.

신경 쓸 일이 생겨서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면, 소화가 잘되지 않고, 배가 아픕니다. 위는 제2의 뇌입니다. 얼마나 빨리 반응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위가 달라집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위가 편안해져서 소화가 잘 됩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소화제는 마음이 편안한 것입니다.

 

걱정이 많으면 잠을 편히 잘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편안하면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수면제는 마음이 편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염려하고 고민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은 만병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걱정을 많이 하는 것은 도리어 해가 됩니다.

잠언 1722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꾸 근심하면 뼈가 마른다고 했습니다. 몸에 있어서 뼈는 몸의 기둥과 같고 뼈에서 혈액이 만들어 지는데 염려하게되면 이 뼈가 마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염려는 마음을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고, 자신감을 잃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꾸 실수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실패하게 됩니다.

피아노 연주를 잘하는 연주자가 잘해야 하는데.’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더니 실제로 연주할 때에는 손가락이 굳어서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했습니다. 염려하고 걱정하다 보니 평소의 실력발휘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종종 학교에서 논문 디펜스를 앞두고 염려하는 학생들이 기도하고 가면 평편안한 마음으로 디펜스를 잘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셋째, 염려는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방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방인들이 밤낮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라고 걱정하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고, 책임져주실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까 하나님 한분만 두려워해야 하고, 하나님만 생각해야 합니다. 절대주권은 하나님 아버지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변함없으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아까워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이 무엇이 아까워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방인들처럼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염려가 생긴다면, 믿음이 약해졌고, 믿음이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걱정거리가 많아도 걱정되지 않고, 분명히 전화위복될 것이고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고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서 걱정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굉장히 건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시시한 것 때문에 신경 쓰고, 걱정한다면, 이것은 믿음이 약해진 증거이고, 믿음이 병든 증거입니다. 마음이 평안한지, 염려가 있는가를 보면, 자신의 믿음을 진단해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염려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 보면,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고,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 믿음이 더 약해지고, 믿음이 병들게 됩니다.

믿음이 약해지고, 믿음이 없어지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 걱정하게 됩니다. 걱정하다 보면, 믿음 없는 말을 하게 되고,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염려하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염려거리가 많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을 하십니까?

근심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염려를 극복하여 축복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드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7절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염려를 내가 가지고 발버둥치지 말고 주님께 맡겨버리면 하나님이 다 우리를 돌봐주신다는 겁니다.

 

저는 화요일부터 주일까지는 교회 사무실에 나와 하루종일 사역합니다. 설교준비도 하고 전화상담도 하고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집안일이 생기면 급한 일이 아니면 모아 두었다가 월요일에 처리합니다. 월요일까지 교회에 나와 보았는데 피곤이 풀리지 않아 한주간 내내 영향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염려거리 해결도 이와같이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염려거리는 누구에게나 다 생기게 마련입니다. 염려가 생길때마다 그때마다 염려하고 하지말고 기도시간에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책임을 지시고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까마귀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까마귀는 성경에선 아합왕에게 쫓겨서 도망가던 선지자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는 존재로도 나옵니다. 까마귀는 새 중에서 가장 영리하며 동물계에서도 침팬지, 돌고래, 까치와 함께 인간 다음으로 똑똑한 동물에 속합니다. 훈련받은 까마귀의 지능은 6~7세 아이 정도로 까마귀가 병 속에 든 물을 마시기 위해 돌을 병 속에 넣어 물을 마셨다는 이솝의 우화에 나오는데 영국에서 실험한 결과 실제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부리가 닿지 않는 병 속에 물 위에 떠있는 곤충을 먹는 과제였는데, 옆의 돌을 주워다 수위를 높여 벌레를 건져먹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관찰을 해보니 호두같이 단단하여 내용물을 먹기 힘든 음식물을 먹을 때 신호등에서 멈춰있는 자동차 바퀴 앞에 호두를 갖다 놓고 자동차가 지나간 후에 껍질이 부서지면 알맹이를 먹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물이 든 페트병을 보고, 사람에게 병뚜껑을 부리로 건드리며 열어달라고 요구한 까마귀도 있었읍니다. 뚜껑을 열어야만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사회성이 매우 발달한 동물로 늑대처럼 떼지어 다니지는 않지만 고유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관찰되기도 합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만개의 씨앗을 구별해낸다고 합니다. 스크럽 제이라는 까마귀는 먹이를 숨긴 장소뿐 아니라 숨긴 시간과 먹이 종류까지 기억한다고 합니다. 애벌레와 땅콩을 숨기게 한 뒤 짧은 시간이 지났을 때에 찾아먹게 시키면 더 좋아하는 먹이인 애벌레를 찾아 먹지만, 숨긴 뒤에 며칠 뒤에 찾아먹게 시키면 이미 부패한 애벌레는 찾지도 않고 땅콩을 찾아 먹는다. 먹이에 따른 부패 시간을 알고 있으며, 시간의 흐름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좋은 만큼, 은혜를 입으면 또 그건 잊지 않을 때도 있읍니다. 해외에서 다친 까마귀를 치료하니까 그 사람에게 날아와 애교를 부린다든지 아끼는 반짝이나 잡동사니를 선물한다든지 그 사람이 길을 가다가 소리지르면 근처 사람들이 공격하는지 알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며 그 사람을 보호하듯이 감싼 사례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그 까마귀 작음 머리에도 지혜를 주셔서 살아가게 하시는데 우리는 까마귀보다도 머리도 커고 얼마나 더 귀한 존재인데 돌보시지 않겠습니까?

염려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염려라는 말과 생각이라는 말이 동시에 나옵니다. “염려지 말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절에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근심거리가 생기면 그 근심거리가 없어질 때까지 하나님 앞에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근심거리가 생길 때마다 아하! 기도하라는 싸인이구나’, 생각하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다보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근심거리가 생겨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 수 있는 행복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혹 교우들께서 기도해도 염려가 되신다는 분도 계십니다. 기도해도 염려되는 것은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염려되지 않고, 마음에 평강이 생길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은혜 받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때 큰 믿음이 생깁니다. 마음에 평강이 생기고, 염려되지 않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 행복하다]라는 책에서 유정옥 사모님이 참 멋진 글을 썼습니다. 먼저 염려의 시간을 지나온 누군가의 신앙이 우리에게 힘이 되지요.

나는 요즈음 내 삶의 모든 경기에 임하면서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것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이름 대진표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다윗도 그 경기의 대진표의 이름을 바꿀 수 있었기에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다.

소년 다윗 VS 골리앗 장군 (누가 보아도 다윗이 진다)

하나님 VS 골리앗 장군 (누가 보아도 골리앗이 진다)

모세도 그 경기의 대진표의 이름을 바꿀 수 있었기에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다.

양치기 모세 VS 애굽의 바로 왕 (누가 보아도 모세가 진다)

하나님 VS 애굽의 바로 왕 (누가 보아도 바로 왕이 진다.)

나는 요즈음 내 삶의 대진표를 다시 짜고 있다. 내 이름을 빼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꾸는 일이다. 예를 들면,

유정옥 VS 말기 암 (누가 봐도 유정옥이 진다)

하나님 VS 말기 암 (누가 봐도 말기 암이 진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 우리의 삶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때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피할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하여 염려의 방법보다는 하나님께 맡기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대진표를 다시 짜야합니다. 우리가 염려거리와 싸울려고 하지말고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므로 그 염려꺼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싸우도록 하셔야 합니다.

 

둘째, 모자람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감사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언제 염려가 찾아오나요? 우리가 원하는 것 만큼 채워지지 않을 때가 아닌가요? 모든 것이 부족한 것이 없고 내 힘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면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수없이 많은 역설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염려거리라고 생각했던 것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사용하시고, 우리는 복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그의 삶에서 모자람때문에 고민하며 기도했던 사람이죠. 사도 바울이 그의 몸의 가시를 가지고 기도할 때, “그것이 너에게 은혜다!”라고 말씀하셨고 그가 가시를 가지고 있으므로 평생토록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고 그의 기도로 말미암아 받은 은혜로서 그는 능력있는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나의 약할때가 곧 강할때라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장에서 가난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모자람으로 당황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자람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랐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만드신 기적의 포도주를 맛볼 수 있었던 역설 말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모자랄 때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을 기대하십시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 더욱 큰 기적을 에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구하는 것을 잠시 거절하실 때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믿으십시요

우리의 삶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없이 질문을 하죠. 아니 하나님께 따져 묻기도 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염려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아버지와 아들이 기차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 아버지 성폭행이란 것이 무엇이예요?” 아버지는 아무말않고 머리위 짐칸에 있는 무거운 가방을 내리더니 아들보고 들어보라고 합니다. 아들이 가방이 무거워 들지를 못하자 아들에게 말합니다. “ 아들아 이 짐 가방은 지금은 너에게 무거워 들지 못하지만 너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들 수가 있어. 너가 한 질문도 지금은 내가 설명을 해도 너가 이해하기가 어려워. 그러나 너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이해할 수가 있단다.” 라며 설명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때때로 우리의 삶에 경험되는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는 “ Why Me?" 라며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어려서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다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지나고나면 나중에 우리는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우리가 할 일은 이와같습니다.

빌립보서 46~7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밤과 낮이 있듯이 우리에게는 감사거리와 염려거리가 있습니다. 염려거리만 생각하지 말고, 감사거리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다 보면, 큰 은혜를 받게 되고, 큰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마음에 평강이 생기고, 기쁨이 넘치고, 모든 것이 잘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하실 때, 오늘 하루 감사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염려거리는 제쳐두고, 감사할 것만 찾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아갈 때, 성령께서 기뻐하시고, 은혜를 부어주시고, 마음에 평강을 주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감사하며 살다 보면, 감사할 것이 점점 많아집니다.

 

셋째,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염려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31절에 보면 그 염려를 극복의 방법으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에서 구하라.’라는 말은 계속적으로 구하라.’라는 말입니다.

내일로 염려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불공평하고 불의한 일로 인하여 불평하기보다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는 일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살고 강대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 처음 이주해온 사람들은 잘 살 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까? 하는 고민을 가지고 와서 종교의 자유를 구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이렇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의 인생을 보면 너무나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는 정말 억울한 일과 예기치 않은 일을 자주 경험했습니다. 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일, 게다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다 당한 일이었습니다.

요셉의 삶의 최고봉은 창세기 5020절의 고백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그가 살아가는 순간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지금 당하는 일을 보면 장래가 얼마나 불투명하고 염려스러웠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고 형통함을 경험합니다.

로마서 828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요즘 세상은 어떻습니까? 염려하면서 사는 것이 정상으로 보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는 자들은 좀 이상해 보입니다.

그리스 말로 어리석다의 원어의 뜻은 복되다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속으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어리석네, 어떻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서 민생고를 해결하란 말인가? 민생고를 해결하려면 세상 주권자 곧 이 당시는 로마 나라의 뜻을 따라야지.”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이 곳에서 우리들의 민생고가 잘 해결되려면 미국 사회 법과 전통 및 문화를 잘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2000년전 산상수훈에서 하신 말씀을 똑 같이 하시지 않으실까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신앙은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먼저 생각하고, 무엇을 먼저 하느냐?’ 라는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믿고 산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먼저 하며 하나님의 방식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신 분이 있습니다. 하형록 목사님이십니다.

그는 세계적인 건축 설계회사 Timhaahs의 회장이고 오바마 정부 건축자문의원을 역임하였습니다. 특히 주차장 설계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어릴 때 아버님이 목회자이셨는데 문둥병 환자를 목회하신 분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받았습니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와서 U Penn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는 건축회사에 취직해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 갑니다.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심장병 증세가 발작이 되어서 의식을 잃고 맙니다. 심장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릅니다.

결국 심장 이식 수술을 받기로 하고 기다리는데 맞는 심장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죽어야만 심장을 얻을수 있고 죽는 사람과 모든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병원에서 첫 심장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5개월이나 기다렸습니다. 통계적으로 심장이식 수술을 기다리다 자기한테 맞는 심장이 나타나지 않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해 죽는 사람이 50%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병원에서 5개월 정도를 기다렸다는 것은 그만큼 사망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 그대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주 건강하고 딱 맞는 심장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당장 수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의사가 망설이는 눈치로 주저하더니 문득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옆방에 어떤 젊은 여인이 3일 전 헬리콥터로 실려 왔는데, 우리가 검사해 보니 그 여인은 이틀 안에 심장이식 수술을 받지 못하면 죽어요.”

물론 하목사님이 먼저 신청했기 때문에 우선권이 있었습니다.

몇 초가 지났을까, “그 젊은 환자에게 너의 심장을 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웃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5개월을 기다렸는데 이 심장을 양보하면 또 5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심장을 양보했고 옆방의 환자는 건강하게 살아서 퇴원했고 목사님은 7일 뒤 위독해졌고 의식을 잃습니다.

의식 잃은 상태로 한 달을 견뎠을 때쯤 또 다른 심장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상태가 좋지 못한 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태가 너무 위독했기에 일단 사람이라도 살려 보자고 하였고, 의사의 권고에 따라 수술을 받습니다. 그 상태가 좋지 못한 심장을 가지고 6년을 살고 그 후 두 번째 심장이식 수술을 받습니다. 그 후 그 목사님은 건강하게 살아가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분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했습니다. 물론 세상적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 목사님은 자기 스스로 심장을 고칠수 없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웃을 위해 심장을 양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결국 이 모든 것을 더하는 놀라운 축복 위에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은 까마귀를 생각하라는 말씀으로 염려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무쪼록 저희교우들께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추구하시는 삶을 통하여 염려를 극복하시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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