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눅 15:1-7
한국일보에 따르면(2010년) 미국서 실종되는 어린이 숫자가 하루평균 2천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매년 80여만명의 18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이 실종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중 18세 미만 여학생이 유괴 및 납치의 주된 피해 대상이라고 합니다.
2008년기준 여자아이가 33만명으로 절반이 넘는다고 합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은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 직장을 팽개치고 전국을 돌며 전단지를 뿌리며 아이를 찾기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친다고 합니다. 왜 그렇죠? 자기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서대문에 사는 전숙자(가명)씨는 1973년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던 아들(당시 5세)이 사라진 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편안히 잠을 잔 적이 없다고 합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죄책감에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고, 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암이 온몸에 퍼졌읍니다.
“이제 포기하라”는 친동생의 만류에 “네가 자식 잃은 어미의 마음을 아느냐”며 오히려 호통을 치곤 했읍니다. 전씨는 “하늘이 우리 아이를 만나라고 나를 죽을 고비마다 살려준다”며 40대가 됐을 아들을 찾아 지금도 헤매고 있다고 합니다.
한 실종아동 가족의 말입니다.
“모든 일은 시간이 가면 다 해결되고 아픔도 잊혀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내 아이가 별안간 종적도 없이 사라져 몇 년째 생사도 모르는 상황이 되면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이 커져요. 이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생사 여부라도 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들 말씀하세요. 세상에 잃어버린 자식이 죽어서 돌아오는 것을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희망과 절망 사이를 수천 번 왔다갔다 하는 게 실종아동 부모들의 심정입니다. 차라리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는 얘기라도 듣고 싶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모든 세리와 죄인들은 결코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영접하실 뿐만 아니라 함께 식사도 하시고 그러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 유숙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처신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렸다. 목자는 아흔 아홉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마침내 목자는 그 잃어버린 양을 찾았다. 목자는 그 양을 자기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벗과 이웃을 초청하여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여러분,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나는 잃었던 양을 찾았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이와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잃은 자를 찾기를 그토록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가 안다고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어야 합니다.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계시록 2, 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마지막으로 언급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이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여기 ‘두드리노니’ 는 한 번 두드리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두드리는 것을 나타냅니다.
왜 두드리십니까?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이유를 주님은 문을 여는 자에게 들어오셔서 식탁의 교제를 가지시겠다는 약속하셨습니다.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함께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화해와 신뢰와 친밀감’ 의 표시입니다. ‘더불어 먹는다’ 는 표현도 그리스도와 더불어 긴밀한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을 뜻합니다. “음식을 같이먹는다”는 말은 삶을 같이 하시겠다는 표현입니다.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공생애시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심지어 창녀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육신의 평안, 영혼의 구원, 풍성한 삶을 위해 하나님의 은총이 절대 필요합니다. “나는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거룩한 식탁의 교제가 하나님 나라의 영상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초청에 문을 여는 자는 주님과의 참된 교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관점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 죄인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십니까? 다른 사람인가요? 아니면 나 자신인가요? 우리는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자주 잊어버립니다.
나는 저기 있는 저 나쁜 사람보다 더 의롭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받아주신 것처럼 착각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을 때가 많은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을 함께 할 수 없는 자로 보았습니다. 죄인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로 생각했고 배척했습니다. 죄인과 함께 하면 자신도 죄인이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죄인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다르게 죄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천국을 떠나서 친히 사람들에게 오셨습니다. 사람이 되셔서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죄인들과 어울리십니까? 죄인들이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잃어버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죄인에게 다가오셨고, 죄인과 식사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도 죄인들과 함께 식사해야 합니다. 그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을 돕고 그들의 삶에 동행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잃은 자를 찾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원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 둘째는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 다녀야 합니다.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복음을 주셨읍니다.
눅15장에는 유명한 세 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그리고 잃어버린 탕자의 비유'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눅15:1-10절까지 말씀에 나오는 두 가지 비유, 즉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비유라든가 그 뒤에 나오는 잃어버린 은전을 찾기 위해서 등불을 켜들고 온 집안을 쓸고 닦으면서 샅샅이 뒤져서 마침내 잃어버렸던 드라크마, 은전 하나를 찾은 여인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애를 쓰셨는가에 대한 그런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백 마리 중의 한 마리, 열 드라크마 중 한 드라크마, 두 아들 중의 한 아들, 이렇듯 한 사람에게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한 사람은 우리 보기에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인 중 한 사람이 돌아오거나 세리 중의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의 모든 천군 천사들과 함께 잔치하고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인간 대우 받지 못하는 존재 하나,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지극히 하찮은 존재 하나가 돌아 오기만을 하나님께서 간절히 기다리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예배보다 더 기뻐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잃은 영혼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이 되어 화려한 예배를 주님께 드린다고 할지라도 주님께 돌아온 잃은 양 한 마리를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잃은 양을 찾기위해 찾도록 찾기까지 찾아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전도라는 것이 그렇게 금방 되지 않습니다. 3년, 4년뿐 아니라, 10년이 되어도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위해 매일 기도합니다.
오래 전에 스코틀랜드에서 목회하는 두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역했지만 그분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두 분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먼저 한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기를,
“사실 저는 지난 3년 동안 사역을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거듭난 성도는 아직 한 사람밖에 얻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한 주간 동안 부흥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커다란 기대를 걸고 열심히 집회를 인도했는데, 마지막에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하고 헌신한 사람은 일어나라고 했더니 딱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두 목사님은 서로 목회 생활의 쓰라린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목사님이 3년 만에 딱 한 명을 얻었다고 한 그 사람이 로버트 마펫인데, 그는 아프리카 선교의 기초적인 틀을 마련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이 부흥회를 통해 영접한 단 한 사람, 그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대륙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불을 지른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딱 한 명이라 할지라도 그 한 사람의 가치가 정말 소중합니다. 성경은 결코 하나의 가치, 그리고 작은 것을 작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며 보잘것없는 것인데 나중에는 커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찾기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찾아 나서야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같이 빛나리라”(단12: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날에 여러분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