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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떠나시며 남긴 말씀

 

1:4-5

4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지난 100년간 가장 위대한 100명의 스타의 여성 배우 목록에서 3위에 오른 여배우. 살아 있는 천사, 우아한 스타일리스트, 요정, 청순미, 깜찍, 발랄, 모태 미인, 만인의 연인, 여배우. 세월이 흘러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 아름답되 이지적이고, 우아하되 기품이 넘치는 여왕 같은 이미지..오드리 햅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독일 점령기의 네덜란드에서 자란 오드리 헵번은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가 떠난 뒤 집안이 몰락하자 어머니는 딸과 함께 네덜란드에서 궁핍한 독일 점령기를 보내야 했고 헵번은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다.

1953년 그레고리 펙과 함께 출연한 데뷔작 로마의 휴일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신데렐라가 된 것이다.

오드리 헵번은 인생 후반기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로서 아프리카·서남아시아·중남미 등 세계 각국의 극빈곤층 어린이들을 돌보며 제2의 인생을 살았다.

그녀는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소말리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자식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유언처럼 시를 남겼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눠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며,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떠나시면서 남김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고도(古都)이다.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란 뜻입니다.

예루살렘이 특별한 이유는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다윗왕이 통일왕국을 세워 수도로 삼은 곳이자 솔로몬 국왕이 최초의 유대교 성전을 세운 곳이며,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신에게 바치려던 바위가 있는 곳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의 숨결과 발자취가 곳곳에 서린 곳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사랑하셨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예루살렘을 품으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당시 예루살렘은 제자들이 머물기에 어려운 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의 종교의 중심지이며 성전이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곳입니다.

그곳에 남아있다가는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잡혀서 죽을 수도 있는 두려운 장소였습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두려운 장소였습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피하고 싶은 떠나가고 싶은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려고 하는 중이었으므로 예수님은 떠나가시고 그들만 남겨질 상황이어서 예수님이 안 계시는 예루살렘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곳에 남아있고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한 분을 믿고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그들을 좌절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머물고 싶겠습니까?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예루살렘은 유대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중심지 예루살렘 한 복판에서 복음전도사역을 시작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결코 주님이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복음이 땅 끝으로 퍼져가는 출발점으로 정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도 각자의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삶의 중심지 그러나 어쩌면 그곳은 두려움과 절망적인 추억의 장소일 수 있습니다.

목회자에게는 현재의 목회지가, 불황에 허덕이는 사업가에게는 회사가, 가난과 불화에 지친 가정주부에게는 가정이,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 자체가 정리하고 싶은 예루살렘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삶의 중심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정, 일터, 교회 등을 지키라 하십니다. 포기하지말고 그곳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예배당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마치 예배당에 들어서기만 해도 감염이나 되듯이 조심하고 신경쓰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감염을 피하기 위하여 손을 자주씻고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힘써야 하지만 영상통화라든지 카톡 등 비접촉 문화기기를 이용하여서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 나도 그들중에 함께 있느니라 말씀하셨고(18:20)

솔로몬도 전도서 4:9-12에서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복음사역을 위하여 결코 우리의 삶의 중심지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멋진 대책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보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성령을 보내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그 결과 제자들이 두려워하던 바로 그 예루살렘에서 최초의 방언이 이루어졌고, 최초의 전도 집회가 열렸고(2장의 베드로의 설교), 최초의 이적(성전 미문의 앉은뱅이 장애인이 일어난 일)이 일어났으며,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악의 장소를 가장 위대한 복음의 현장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두려워하던 예루살렘은 그 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고향이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이 자신의 예루살렘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어렵다고 현실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우리를 도울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성령님께서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 속에서 더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예루살렘들이 위대한 성지가 되길 원합니다. 모두 다 같이 각자의 예루살렘을 사랑해야겠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시며 그 시기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어라(24:49)."

 

둘째로 왜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을가?

 

그것은 예루살렘에는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시면서 크게 화를 내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전에서 환전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채찍으로 그들을 쫓으시고 상을 뒤 엎으신 일이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21:13라 하시면서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이사야 567절 의 말씀을 인용하셨읍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왜 기도하는 집인가? 그것을 알기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의 시대로 다시 내려가봐야 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자기가 만든 성전에 계시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열상827절에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며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돌로 건축한 성전에 거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 솔로몬은 왜 성전을 건축했는가?

 

28절에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라고 하며 그가 이 성전에서 기도와 간구로 고할 때 들어달라고 구하고 있읍니다.

 

29(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주의 종과 주의 백성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때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34(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들으시고)

..기도하거든....들으시고, 45(기도하거든...들으시고), 49(기도하거든...들으시고), 52(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고),

 

무려 10번이나 반복 또 반복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솔로몬왕과 이스라엘백성이 각각 또는 온 백성 전체가 어떤 이유에서나 간구하고 기도하면 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은 바로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하나님께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와서 간구하고 기도하면 들어주십사 또 들어주시리라는 기도의 집이 되기를 바라고 성전을 건축한 것이다.

 

하늘들의 하늘도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건축한 성전에는 거하시지 못하지만 그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기도하고 간구하면 찾아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의 집이요 하나님께 들으신바되는 기도가 되고 응답이 되는 기도의 집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열상9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라고 하나님이 솔로몬의 그 기도를 들으시고 성전을 주를 찾는 모든이들의 기도의 집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두시고, 그의 눈길과 마음을 영원히 두시겠다 약속을 하시는 것이다.

 

이사야566-7절에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라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 머물라는 주님의 말씀이 제자들에게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곳은 제자들의 무기력함을 드러낸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제자들은 주님 따르는 일에 실패하였던 기억하고 싶지않는 쓰라린 안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할 시간에 기도하지 않음으로 실패한 그곳에서 다시 그들이 기도함으로 그들을 회복시키시기 원하셔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물롬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회복시키셨고 다시 사명을 맡겼습니다. 그런자 갈릴리는 사랑의 추억의 장소 회복의 장소였지 시험의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땅끝까지 복음을 들고 나가기 위해서는 그 실패의 장소인 예루살렘에서 멋있게 성공하는 기억이 필요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기도해야 겠기에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오셨고 거기서 기도하게 하시고 하늘의 능력이 임할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말라고 분부하셨던 것입니다. 땅끝까지 주님의 부활의 증인되는 사명은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것만 가지고는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권능을 받아야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려면 그들은 전심전력하여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머물러여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몸서리치던 수치와 패배, 낙담, 절망을 간직해야만 성령강림에 대한 기대를 심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패한 그 자리, 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그 자리에 한 발짝도 물러서지 말고, 부릅뜬 눈으로 자신들의 바닥난 인간성을 응시할 때에라야 만이 비로소 그들은 간절히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갈릴리에서 남겨진 채로 성령을 기다렸다면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처절하게 실패하고 나면 비로소 하나님을 찾습니다.

 

 

 

2.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셨던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4:16)라고 했습니다.

여기 또 다른 보혜사란 예수님과 똑같은 보혜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보혜사이셨고 성령님도 똑 같은 보혜사이시라는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남을 돕기 위해 불려온 자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 성령이 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이고 너희는 온 세상에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 여기서 권능이란 단어는 기적을 일으시는 힘을 의미합니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폭약중에 다이너마이트라는 것이 있읍니다.

이 폭약은 알프레드 노벨이라는 사람이 개발했는데 이 권능(헬라어 두나미스)에서 따서 이름을 다어너마이트( Dynamite )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가까운 곳에 채석장이 있어서 종종 놀러간 적이 있는데 작은 다이너마이트를 바위사이에 구멍을 뚫고 넣고 폭파시키면 온 산이 떠나가라 굉음이 울리며 거대한 바위들이 깨져 나오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런데 며칠 있다 가보면 큰 산 한 쪽이 없어져 버린 것을 발견하고 다이너마이트의 위력이 대단하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읍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믿는 자들의 영혼가운데 권능을 주시면 권능이 마치 다이너마이트처럼 그 사람과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것입니다.

다이너마이트는 파괴하는 괴력이 있지만, 성령의 권능은 죄를 깨뜨리고 마귀의 강력한 진인 아집과 고집 교만 위선 자기지식 세상의 철학 궤변을 깨뜨리고 성령의 거룩하심으로 마음과 인격을 새사람으로 변화케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권능을 받은 자는 세상을 향해 거침없는 믿음의 행진을 하게 하는데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증인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며 하나님이시라는 진리를 증거하는 자입니다.

연약한 인간이 성령의 권능으로 세상에 불꽃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뜻을 드러내는 삶이 바로 증인의 삶이며 우리 주님은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 성령으로 자신을 불태우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제자들에게 가르쳤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의 뜻을 온전히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시고 난 후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했던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일수록 진리를 바르게 분별할 줄 알게 됩니다.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왜 우리가 교회에 다녀야 하고 예수님을 믿어야만 되는지를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이 보혜사를 the Counselor로 번역을 했습니다.

상담 전문가입니다.

요한일서에서 21절에서는 대언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사고가 나도 변호사가 있는 것과 변호사가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경력도 없는 변호사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유명한 변호사가 변호를 맡아주면 엄청난 효과가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나의 변호사가 되어주신다면 특별히 요한일서 2장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함께 나의 대언자 즉 나의 변호사가 되어주신다면 우리를 정죄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정죄하고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잘 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변호하시고 또 우리를 위로하셔서 죄를 이기게 하시고 힘을 얻게하시기에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라는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를 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6-27)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기도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해서 어려움을 당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친히 기도해 주시고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심으로 우리가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큰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게 기도할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도 모르지만 성령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함께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사람의 마음은 정원과 같습니다. 잘 가꾸면 아름다운 화원이 되지만 내버려두고 가꾸지 않으면 거친 들처럼 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 여러 일에 부딪히며 살아가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굳어집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로 인하여 생긴 상처와 고통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점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돌같이 굳어집니다. 그리고 인내심이 사라지고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분노가 폭발하고 툭하면 폭력을 휘두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기 위하여 새 영, 즉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생길을 걸어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아브람이 75년 동안 살던 고향땅을 버리고 가나안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꿈을 주셨기 때문에 그 꿈을 바라보고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75세의 노인의 가슴에 가나안의 지도가 펼쳐져서 새로운 꿈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누군가가 꿈을 꾸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꿈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목적을 잃은 삶을 살기 때문에 허둥지둥 살다가 결국 패배한 인생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를 따라서 같은 꿈을 품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꿈을 가지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셔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영적으로 꿈과 환상을 가지고, 영적으로 믿고, 영적으로 믿음을 선언하는 이 세계 속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니까 꿈의 세계를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그릇입니다. 꿈은 하나님이 우리와 대화하는 언어입니다. 꿈이 있어야 우리들과 대화하고, 우리의 소원을 담아줄 그릇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시편 374절에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했으며, 시편 81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새로운 세계에는 꿈을 꾸며 사는 세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만나서 제일 먼저 꿈이 있는가?’고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우리 안에 꿈이 있는가?”를 먼저 물어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길 가에 앉아 구걸하던 한 맹인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은 길거리에 앉은 거지가 동냥하고 살다가 예수님 부르짖는데 보기 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어보신 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앞을 보고자 하는 간절한 꿈이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시기 원하신 것입니다.

그 맹인은 질병에서 치료 받고자 하는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질문하실 때,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간절한 소망을 말했을 때, 눈을 번쩍 뜨고만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천사들이 가끔 와서 그 물을 동하게 하면 먼저 뛰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고침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전신이 병든 환자가 38년 동안 누워 있습니다. 누가 그를 들어서 우물에 던져줄 사람이 없습니다. 더이상 꿈도 없이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를 지나가시다가 그 사람을 보십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누가 봐도 병 낫기 위해서 누워 있는데 주님 왜 그것을 묻습니까? 도와주기 전에 꿈부터 먼저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러자 병자는 벌떡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38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어보신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속에 포기해버린 꿈을 다시 살려서 그 꿈을 통해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는 꿈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노후대비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운동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준비를 빼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에 꿈을 가지는 것입니다. 늙어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꿈을 갖지 않으면, 100세시대에 남은 생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은퇴한 사람의 40%가 우울증을 겪는데, 꿈이 없으니까 무기력하고 우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가 꿈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꿈과 소원을 주시고 이를 통해 우리 삶에 변화와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원이란 꿈이 아닙니까? 꿈을 살려놓고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요즘같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도, 꿈과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 살아남습니다. 우리는 꿈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꿈과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쌀독에 쌀이 떨어졌다고 굶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꿈이 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금식은 해도 살아날 수가 있지만, 꿈을 놓쳐 버리면 절망에 처해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희교회가 코로나19로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했던 날 저는 오전에는 예배당문을 열어놓겠다고 광고를 했었기 때문에 교회문을 열어놓고 제 사무실에 있는데 저희교회 교회학교 영어교사인 로이스선생님이 오셨읍니다.

그래서 창밖으로 인사를 했더니 잘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로 뭐라뭐라 하시더니 돌아가셨읍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자기가 기도했는데 교회가 안전하다고 그말을 전해주러 왔다고 하는 말인 것 같아서 같았습니다.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했었는데..오늘 생각이 나서 서목사님께 사례비는 잘 전달해 드리고 있는지 확인도 해볼겸 그날와서 한 얘기가 무슨 말이었는지를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서목사님이 통화를 하시고 혜린이가 옆에서 들은 말에 의하면

코로나가 시작하기전에 로이스선생이 잠을 자는데 예수님이 자기를 깨우더니, 방문에다 대고, "예수님의 보혈"이 임하길 기도하라고 해서 영문도 모르고 문과 들어오는 복도에

" 이곳에 예수님의 보혈이 임하옵소서" 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와서도 교회의 문들에 "예수님의 보혈이 임하옵소서" 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혜린이 말로는 목사님께서도, 교인들에게도 자기 집처럼 "이곳에 예수님 보혈이 임하옵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했답니다.

어쨌던 두번째 이야기는 제가 이해하지 못했지만 제가 이해한 바대로 주님앞에 주일예배를 조금은 불안한 가운데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로이스 선생을 통해서 염려하지말라고 하신 것 같아 감사했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기다리는 자에게 임합니다.

여러분들도 집에 가셔서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칠해 놓았을때 죽음의 천사가 지나갔던 것처럼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가 우리현관에 임하옵소서"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코로나19의 죽음의 저주가 여러분의 집에 임하지않고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기다리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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