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서 구원하실 분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즈음 한국 뉴우스를 보면 대통령 후보들 가족의 죄 문제로 시끄러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드러나지 않았을 가족의 부끄러운 일들이 부각되어 지면서 대통령 후보들이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세워놓고 털기 시작하면 내가 어떻게 될까?
사탄이 옆에서 남이 모르는 나의 숨은 죄들을 다 밝히면서 고자질을 하며 청문회 식으로 죄 추궁을 받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막연한 공상만은 아닙니다. 세상 끝 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전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각자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심판 받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는 일점일획이라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히틀러가 특별히 신뢰하던 신복 중 하나인 알베르트 슈페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제2차 대전을 치를 때, 독일 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독일의 모든 공장을 100% 가동시키는데 천재적인 지혜를 발휘했던 공학자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전범 24명이 재판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슈페르도 있었습니다. 다른 전범들은 모두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죄를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슈페르만이 자신의 죄를 법정에서 인정하여 20년 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감옥에서 형을 살고 나오자마자 여러 권을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미국 ABC 방송 기자가 그와 함께 인터뷰를 한 일이 있습니다.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슈페르 씨, 당신이 초창기에 쓴 책을 보면, 나의 죄는 절대로 용서 받을 수도 없고, 용서 받아서도 안 된다.는 말이 있던데요.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까?
슈페르가 아주 슬픈 기색을 띠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 죄값을 치르느라고 20년 형무소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 값을 다 치르고 석방이 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범한 죄는 절대 용서 받을 수가 없다고, 그리고 용서 받아서도 안 되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2차 대전 때, 희생당한 수백만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그가 형무소에서 나오고 나서, 수십 년 동안 자신의 범죄를 철저하게 책임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처절하게 참회의 길을 찾고 있었지만, 죄책감에서 자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 힘으로는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무섭고 잔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인터뷰를 끝내고 몇 일 지나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죄를 범한 후 양심에 남아 있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 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습니까? 아무리 죄 문제를 내 스스로 처리하고 그것이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해도 자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나에게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이웃에게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에게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없이 내 스스로, 독립적으로 내가 죄 문제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슈페르처럼 결국은 자기 죄책감을 안고 씨름 하다가 인생을 떠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무엇이었습니까?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과 사탄의 노예 된 이런 인간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므로 우리는 구원의 조건을 얻게 되었고,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용서함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멸망에서부터 구원합니다(창 19:19). 환난에서 구원합니다(삼하 4:9). 또는 죄 가운데서, 저주 가운데서 구원합니다(마 1:21). 질병 가운데서 구원합니다(요 5:7∼9).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니다(히 2:14∼15).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용서와 은총을 받지 못하며 아버지께 오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도 없고 나갈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사에게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역의 기쁨이 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수고하고 애쓴 삶을 주님이 알아주시고 훗날 우리가 주님앞에서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보고할 날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쁘게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70명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전도자로 보내시기 전에,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낼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각 마을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능력을 행하고 병도 고치고 심지어 귀신도 쫓아냈읍니다.
그들이 이제 예수님 앞에 다시 돌아 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님의 일들을 하면서 경험했던 놀라운 경험들을 예수님 앞에 나와서 보고하면서 기뻐했던 것입니다. 흥분되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돌아와서 최고로 기뻐하며 보고한 내용은 제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명령했을 때에 귀신들도 항복했다는 것입니다. 그 악하고 더러운 존재가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파송받았던 칠십 인 제자들이 돌아와 기뻐하며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누가복음 10:17)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회적인 약자들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싸워서 승리의 기쁨을 누릴 만한 위치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다른 사람에게 굴복해야 할 형편이지, 누구를 굴복시켜서 항복을 받아낼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적인 권세를 주셔서, 악한 귀신의 권세를 이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전도하러 갔을 때에,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신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20)
귀신들 너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구나. 이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른다. 그 기쁨을 간직해라. 그러나 그 기쁨보다 큰 기쁨이 있다. 네가 죄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책에 네 이름이 기록된 것이다. 그것으로 기뻐하라.”
많은 능력이 있고, 업적도 가졌지만, 그 소유로 기뻐하지 말고, 너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업적이 많아서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인이었지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믿고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고백했을 때, 하나님이 내 이름을 기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이름을 하늘의 책에 기록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쁨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쁨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이다.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책에 기록하셨다.’ 이 큰 기쁨을 갖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십니다.
제자들이 영적인 권세로 귀신을 항복케 한 것이 기뻐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기뻐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주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우리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기뻐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하여서 우리가 구원함을 받고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된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무엇보다도 이 사실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이러한 복을 주시기 위하여 천국보좌를 떠나서 이 땅위에 찾아오신 성탄절입니다.
이 주간은 고마우신 주님의 탄생을 기억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될 천국의 복락을 묵상하시면서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