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바 되었으니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현대인들의 삶에서 재미와 즐거움은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또 이런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위해서 세상은 끊임없이 뭔가를 쏟아냅니다. 온갖 신 상품과 전자제품들, 예쁘고 멋있는 옷들, 식당과 술집 등이 서로 자신들이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겠다고 손짓을 합니다. 또한 방송, 인터넷, 영화, 신문과 같은 대중매체들과 스포츠, 자동차, 연애, 문화들도 재미를 주겠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재미와 즐거움을 얻는 사람은 항상 소수에 불과합니다. 뿐만아니라 세상의 재미는 물질적이고 상대적이고 일시적입니다.
또 세상의 즐거움은 당장은 좋으나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허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큰 즐거움을 얻고자 술과 마약, 도박과 같은 자극적인 것들을 취하는데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통해서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을까요?
2천년전 베들레헴 목자들이 들판에서 밤에 자기 양들을 지킬 때 갑자기 천사들이 나타나자 이에 목자들은 심히 두려워했읍니다.
그 때 천사가 그들에게 말했읍니다.
눅2:10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우리를 위해 구주가 태어 나신 것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주님께서 이 땅위에 오신 것은 유대인에게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그리고 가난한 사람, 부자, 병든 사람, 건강한 사람, 젊은 사람, 연세가 든 사람, 모든 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뉴스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첫째는 주님의 오심은 우리를 향하신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 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의 분명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사랑표현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옛날 부모님들은 유교사상에 영향을 받아서 사랑을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양반스럽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들은 사랑은 표현이 되어져야 한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사실 사랑하다고 하면서 그 흔한 말 한마디라도 다정하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는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시거나 말로만 사랑하시거나 대강 적당히 사랑하시는 척 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확실히 사랑을 하시고 그 사랑을 정확히 표현을 하시고 그 사랑하심을 행동으로 나타내어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사실 성경전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랑의 편지입니다. 표현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10절 말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말로만 하신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실제로 나타내어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은 감정만을 가지고 사랑한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최고의 표현으로 즉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시는 유일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 사랑하심을 나타내어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표현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목적이 정말로 우리를 위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절이 되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성탄절이 되면 기뻐하는 이유는 우리를 살리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요일 4:9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는데 예수님을 보내주신 목적은 우리를 살리려고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이 범죄한 이후로 하나님과 우리관계는 깨어졌고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존재가 되어지고 우리는 죄의 영향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누구나 구원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죽을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10 말씀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고, 많은 병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구원하셨고, 수천 마리의 악한 영에 사로 잡혀 완전히 망가졌던 한 청년을 구원하셨습니다.
오라비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졌던 나사로 삼남매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집이라고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잔치에 초청하면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죄인들과 교류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술과 음식을 탐하는 자라고 예수님을 비방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간과했던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살맛이 나지 않은 우리 인생들에게 기쁨을 되찾아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 안에 기쁨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