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십니다.

 

(3:1)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3:2)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3:4)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3: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3:12)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975, 북 캘리포니아 기독교총회센터의 총무로 있던 다이앤 볼이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가는 중간에 한 마을에 들러서 여성 오찬 모임에서 말씀을 전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아침 10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남편이 급한 일이 생겨서 일을 처리하고 오다가 늦게 왔습니다. 그래서 이 다이앤 볼이 남편에게 화를 냈습니다.

여보, 내가 오늘 12시에 말씀 전하기로 약속 했는데 늦게 오면 어떻게 해요!”

화를 내고 이제 차를 출발해 가는데 자기가 화낸 것이 하나님께 죄송하고 남편에게도 미안하여 옆자리에 앉아서 마음에 평안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전3:11 말씀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그 말씀이 그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작사, 작곡을 한 것이 찬송가 623장이었습니다. 623장 가사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시간에/ 아름답게 모든 것 변하리/ 주님 나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시니/ 주의 뜻을 따라서 살리라(1)/

주님의 시간에/ 아름답게 모든 것 변하리/ 나의 정성 다하여 주를 찬송하오니/ 주의 뜻을 이루어주소서(2)’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약속 장소에 가보니깐 주최 측의 사정으로 시간이 연기가 되어서 딱 도착한 시간에 바로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 그분들에게 간증을 했습니다.

내 시간과 계획은 언제나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의 시간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십니다.”

 

요즈음 우리교우들께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시간을 집에 머무르게 되고 접하는 소식을 우울한 소식만 접하다보니 우리의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고 침울해 진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 오늘은 지혜운 사람 솔로몬이 늙은 후 과거를 회상하면서 남긴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모든 시기를 주장하셔서 치료할때도 웃을때도 온다는 것을 믿자는 것입니다.

 

(3:1)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범사가 기한이 있다는 말씀은 언제나 뜨거운 여름만 계속되지 않고 그렇다고 언제나 추운 겨울만 계속되지 않고 다 그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믿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하범사가 다 때가 있다는 천하범사의 모은 일들이 일어나는 시기가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보통 때가 됐다든지, 아직 때가 아니야, 하는 식으로 말합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때가 있다는 건 옳습니다. 여기에서 때란 적절한 시기를 의미합니다.

이 시기에 대해서 가장 잘아는 분들은 농부들과 주부들입니다.

농부에게 있어서 씨를 뿌리는 때와 추수하는 때를 잘 맞추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주부들이 라면을 하나 끓일 때도 시간을 잘 맞춰야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와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모든 일들을 적당한 시기에 일어나게 주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전도서 32-8절을 보면 28번의 때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4가지는 긍정적인 사건들이고, 14가지는 부정적인 사건들입니다.

첫째는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된 시기에 태어나고 하나님께서 장한 시기에 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한 시기가 아니면 제아무리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해도 죽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7:30에는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라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죄를 범하였다고 늘 돌로 칠려고 했읍니다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되기전까지는 그 누구도 예수님께 해를 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으러 갔던 제사장의 하인들마저도 오히려 예수님께 감동을 받고 그냥 돌아 갔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그의 때(죽으실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죽일 때가 있으면 치료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대상21장에는 인구조사로 다윗이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든 것을 황폐화 시키는 때가 있었지만 다윗이 회개하자 전염병재앙을 멈추어 주셨습니다. 그와같이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치료하시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가 있다고 했읍니다.

하나님께서 울고 슬퍼하도록 요구하시는 때가 있읍니다. 지금이 그러한 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로 회복을 위해 울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 장로님도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5:13) 라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삶은 슬플 때가 있으면 즐거울 때가 있고, 절망의 때가 있으면 희망의 때가 있고, 위기가 있으면 기회가 있고, 패배가 있으면 성공의 때가 있기 때문에 슬픔의 때에 좌절허고 절망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기쁨의 날에 교만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극히 우연한 것처럼 보이거나 예기치 못한 돌발사고로 보이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결코 세상만사를 우연에 돌리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가 반드시 개입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만사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그 기한이 차기까지 아무도 그것을 앞당기거나 연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에 서게되면 우리는 불행한 일에 낙담하거나 형통한 일에서 교만하지않고 초연하여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언제나 겸손하게 의지하고 살아가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극히 우연한 것처럼 보이고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로 보이는 일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예견에서 정확하게 결정된 일이며 , 그 시간까지도 정확하게 정해져 있어서 한순간도 앞당겨 지거나 연기될 수 없읍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어 집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평안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절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승천하실 때가 이르렀습니다. 이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심각하게 질문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때와 시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1:7)

우리의 의지로 때와 시기를 조절할 수 없습니다.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낳고 죽는 것을 내 의지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낳고 죽는 것을 조절할 수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과 의지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급하지 않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8:25 우리가 보지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잠간후면 오실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그와 더불어 우리가 기억할 사실은 (3: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고통이 도리어 감사함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름답고, 하나님 안에서 쉼도 아름답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는 모든 것은 모두가 다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시각에서 나를 보고 가정을 보고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여기서 솔로몬은 그 모든 변화들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가장 기분나쁘게 보이는 것도 제때가 되면 아주 어울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모든경륜에는 놀라운 조화가 있어서 그 시기와 함께 관련성을 생각해보면 매우 아름답게 나타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섭리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지금은 보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신비가 완성되는 때에는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얽기고 설켜서 뒤죽박죽 된 것 같이 보여지는 것에 대해 완전한 발견을 할 수 있기 위하여는 인내로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시간 전까지는 아무판단도 내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종말이 올 때에는 우리가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집이 세워지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건축가가 그 건물을 준공할때는 그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시작하여 어떻게 일을 끝내실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3:11).

삶이 신비로운 이유는 바로 그것의 중심이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계산해낼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연현상도 그렇고 우리의 일상도 역시 신비롭습니다. 우리가 계산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우리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이 끌어가는 힘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런 신비가 막연하다거나 단순히 자연 원리라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와 뜻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제 때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도록 만드셨더라.”(3:11a).

 

나사로가 죽어갈 때 마르다는 예수님께 빨리 오셔서 오빠를 고쳐주시기만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사로가 죽고난 후 베다니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일찍 오셨더라면 나사로가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게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나사로 까닭에 예수님을 믿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감옥에 갇혀있을 때에 술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바로에게 상소에 주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나 바로왕이 꿈을 꾸고 그 꿈 해몽자를 찾을때까지 술맡은 관원장은 까맣게 요셉을 잊고 있었습니다. 만일 바로가 꿈을 꾸기전에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위해 하소연을 했다면 과연 바로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등용시키는 일이 있었을까요?

그러나 바로가 꿈을 꾸고 애굽의 그 누구도 그 꿈을 해몽할 수 없을 때에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해 내었고 또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몽하고 그 대책까지 마련함으로 요셉이 자신도 살고 민족도 살리는 자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 라고하는 전염병으로 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망을 넘어서서 희망을 바라봐야 합니다. 모든 불안, 의심, 의혹, 절망의 실체를 알기에는 우리의 생각이 너무 짧습니다. 그러나 오늘 전도서 기자가 말하고 있듯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맞게 만드셨으며, 그렇게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고 두려움으로 풀 죽지도 말고 한결같이 평정된 마음으로 모든 사태를 맞아 들여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

두 번째 헛되지 않는 삶은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임을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

 

(3:12)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알았도다는 말은 가장 좋은 것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즉 살아가는 동안에 기뻐하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사에서 우리의 얻은 분깃을 기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고 건강을 주셨고 가족을 주셨고 교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하여 기뻐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살전5:16) 물론 그것은 단지 감정적인 기쁨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안에서 갖는 성령의 위로로 말미암는 온전한 기쁨을 포함합니다. 또한 성도는 주님안에서 갖는 확실한 소망이 있기에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4:4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즐겁게 산다는 것은 우리가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싶은 대로 마음껏 마시면 서 살아가는 것만을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때 우리는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낼 수 있습니다. 이는 흡사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가 행복한 것과 같습니다

 

둘째는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선행은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순수한 기쁨을 안겨줍니다. 전도자는 선을 행하는 것이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물론이지만 선을 행하는 자신에게도 커다란 행복감을 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선행자체가 구원을 얻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행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3:8, 5:14)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얻은 분깃, 즉 믿음 건강 재물, 시간을 타인들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본업입니다. 가장 참된 즐거움은 선을 행하는 데에 있으며 그렇게 행한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저축이 될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시간은 바로 짧고도 불확실한 이 생에서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는 시간은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시간을 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모든 사람의 생은 자기에게 영원한 이익이 되어줄 것을 행하는 기회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뜻을 정했으면 그것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시간의 투자에 비례합니다. 그리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때란 매우 중요합니다. 때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시간을 아무렇게나 헛되이 보내지 않습니다.

 

불교인들은 세상의 시간을 윤회론적인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그들의 시간이란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으로 나타나고, 그 생명은 죽음을 낳고,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낳는 계속하여 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관을 갖게 된다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회가 다시 오기 때문입니다.

개로 태어났다가 돼지로 태어나고, 언젠가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그 때 가치 있는 삶을 살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간관에 묶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만 시간이냐 내일도 있고 모래도 있는데, 오늘 먹고 놀고 즐기고자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절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시간관은 종말론적 시간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삶을 시작하게 하신 순간이 있고, 끝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처음이 있고 마지막이 있습니다. 기독교 시간관은 종말을 향해 가는 직선의 시간관입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청년의 때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오늘의 시간이 또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시간, 우리의 일생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도박할 수 없는, 연습이 없는 이것이 시간의 엄숙함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1440분을 귀하에 여겨 하루하루를 주님과 주님역사를 위해 쓰기를 기도합니다.

 

스티븐 코비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책에서 사람의 하는 일을 네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긴급하고 중요한 일,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구분했습니다.

사람들이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합니다. 스마트폰이나 게임이나 TV에 시간을 투자합니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말미암아 집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성경보고 열심히 공부하며 책을 읽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기마다 채울 공간이 있습니다. 그 시기에 공간을 채우지 못하면 노년에 생고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치 있는 것에 시간을 써야 합니다.

 

노벨이 값진 삶을 살게 된 일화가 있습니다.

노벨의 형이 죽었는데, 신문에 노벨이 죽은 것으로 기사가 실렸습니다. 노벨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죽음의 상인, 사망이라는 기사였습니다. 그는 그 기사를 읽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단지 죽음의 다이너마이트를 팔아 부자가 된 정도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저 사람은 위대한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겠다고 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모은 돈을 모두 노벨상에 투자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때를 생각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입니다.

 

매사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9:4)

우리에게는 일할 수 없는 죽음의 때, 병들 때가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젊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잠든 영혼, 죽은 영혼을 깨우고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코로나바이라스라고 하는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의 일상을 빼앗기고 답답한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범사가 기한이 정해져있기에 이 바이러스도 곧 끝날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두려워하시지 말고 평강가운데 잘 인내하시고, 아울러 우리에게 주어신 축복들을 기뻐하며 할 수 있는대로 이웃에게 선을 행하시는 보람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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