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적은 섬김에 있다.>

11:13-16. 유윤철 장로 설교

 

 

저는 한국에서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축가로 설계 회사에 다녔습니다. 제가 2002년 미국으로

오기 전에 참여 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바로, 여러분이 한국에 방문하실 때 늘 들러시는,

인천 국제공항터미널 입니다. 미국으로 와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도 건축 설계와

시공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교회와 크리스찬을 배격하며

살다가, 나이 40이 다 되어서야 예수님을 영접하고, 텍사스 휴스턴 서울교회에 출석하며

목자로서 15년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결정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하는 때가 있는 반면,

일상의 삶에서 매번 닥치는 작은 결정들이 있는데, 이 때 어떤 기준으로 결정 하느냐에 따라,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합니다. 때론 좋은 평가를 받는 가 하면 비난을 받게 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저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제가 원하지 않았거나 혹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결정이 이뤄지고 진행되어 온 경우가 최근 들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 부터 저는 여러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룹 사진을 찍을 땐 언제나

제일 뒷줄 끝으로 물러나고,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드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항시 누군가의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한 그런 아이였죠. 그런데 더 문제는 정작 제 속마음은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남들처럼 앞에 나서고 싶고, 자신있게 내 생각을 발표하고 싶고, 여러사람들

앞에서 칭찬받고 싶었지만, 전 늘 남들 뒤에 서 있었습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소극적이어

저와 비슷한 아이들 아니면, 친구가 별로 없었구요. 그러면서도 인기있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그 그룹에 속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말을 잘

하고, 아는 척하고, 늘 앞장 서는 사람들 뒤에 있는 게 더 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안엔

열등감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말예요. 이 열등감은 제 사고 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주었고,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평가를 해 대는 실패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리 만큼, 전 늘 좋은 선배/ 직장 상사가 주변에 꼭 있었고, 그들로 인해 인정을

받곤 했습니다. 내가 잘 해서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영향으로 제가 그 credit

받았습니다. 그렇치만, 제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 30대 후반까지는 제가 한 결정으로 인해

받게 될 결과에 대해 늘 조바심 내고 후회를 반복하는 삶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아도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았고, 남들과 비교하며 늘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보잘것 없는 제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저의 작은 헌신에도 늘 하나님께서는 제게

풍성하게 credit을 주셨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친지도 없는 미국에 오게 되고, 그 수많은 도시

중 휴스턴으로 그리고 가정 교회로 인도되고, 목장을 통해 목자가 되어, 이중문화 가정을

위한 목장과 초원을 인도하고, 그리고 집사로 교회를 섬기는 자리에 있습니다. 제가 계획해서

선택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몰려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내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었기에, 자랑할 수도 불평할

수도 없습니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된 결과가 아니었기에 남에게 자랑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기에, 불평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가 기대했거나 원하던 것과는 다르게 진행될 때가 바로, 하나님의

강권하심이 저를 이끌어 주시는 때라 생각 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나를 강권하여 그 분의 일에 초청하실까? 이는 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자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 말씀처럼,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그런데 [로마서 3:23]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죄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하는 것을 통해 받고자 하는 칭찬, 댓가, 인정, 권위 등, 우리를

위한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죄가 됩니다. 그 반대로, 우리가 관리인으로서 삶을 살 때 바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이런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딤전 1:12> 나는, 나에게 능력을 주셔서 내가 맡은 일을 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그분을 섬기는 이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12] 그것은,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 가운데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속한 관리인이고, 주인이신 예수님의 권한과 능력을 대행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삶입니다. 그러하기에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것이 신실성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 아침에, 신실하고 선한 관리인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자기 신분을 안다. 관리인의 정체성

 

먼저, 신실한 관리인이 되기위해서는 첫째, 자기 신분, 즉 정체성을 명확히 아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26,29절에서 말한 것처럼,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랑하려 해도,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초라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도 그 영광의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나 자신을 맡길 수 있으려면, 내가 주인 행세를 해선 안됩니다.

내가 주인 노릇을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허공에 대고 헛되이 소리치는 자기

자랑입니다. 주인이 세우신 관리인의 신분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주님을 자랑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자주 들은 바와 같이, 우리는 이 세상에 <출장 온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그네>라고도 하지요.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의 일, 즉 사명을 완수해야 할 의무가 있고, 다시

보내신 분께 돌아가 저 이런 일을 하고 왔습니다라고 보고해야 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11:13 에 잘 나와 있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것을 멀리 바라보고 즐거워하였으며, 땅 위에서는 손과 나그네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네가 본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15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좋은 것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출장자, 나그네, 길손 등보다도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음 장소, 다른 영혼을 위해 찾아 나서는 순례자 그래서 만나는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로 세워, 그 영혼이 다른 사람을 구원케 하여 또 다른 순례자를 만들어

내는 삶입니다. 여러분 한번 머리속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이끌어주며 앞서

가는 순례자, 그리고 여러분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어느 영혼을 일으켜 또 다른 순례자로

세워, 어깨동무하고 우리의 본향을 향해 행진하는 모습을요. 정말 멋진 삶 아닌가요!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지도록 하는 것이 순례자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선한 관리인 답게 순례자의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사명을 인식한다. 관리인의 책임

 

관리인을 세우는 주 이유는 주인이 그에게 맡길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맡겨진 일,

사명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관리인에게 두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사명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명에 충실한 관리인의 예가 많습니다. 그중 제일 처음 등장하는 관리인은, 창세기

24 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늙은 종>인거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늙어 아들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 자신의 늙은 종에게 가나안 사람이 아닌,

고향에 사는 친척중 며느리 될 사람을 찾아 오라고 시킵니다. 이 늙은 종은 아브라함 집의

모든 소유를 맡아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재산은 아마 어마어마 했을 것

입니다. 그러니 종이라기 보다는 아마 수석 관리인 정도 였을까요! 이 관리인은 아브라함의

고향 나홀성 근처 우물에서 리브가를 만나고, 주인에게 맹세한 마땅한 신부를 만난 기쁨으로

리브가 집에 방문합니다. 아마 리브가는 단숨에 집에 뛰어가, “오빠 오빠! 있지, 내가

우물가에서 어떤 노인 양반을 만났는 데, 내가 물 몇 모금 드렸다고, 이 금 코걸이 금 팔찌를

막 주시는 거 있지! 내가 보니까 그 많은 낙타에 실려 있는 게 귀한 물건인게 틀림없어!

오빠가 얼른 나가서 정중하게 모셔야 될 거 같애, 얼른~!” 설마 이러진 않았겠죠!

암튼 오빠 라반은 이 노인을 정중히 집으로 모셔 대접해 드리려 진수성찬을 차렸겠죠. 그 때

이 노인은 정색하고 말하기를 제가 드려야 할 말씀을 드리기 전에는, 밥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인이 자신을 보낸 일을 상세히 설명하고, 리브가 부모로

부터 대답을 듣기까지 먹지 않았습니다.

이 때 제가 관리인 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우물가에

도착하였다고 하였으니 시장하기도 했을거고, 먼 여정 끝이니, 이제 좀 쉬면서 대접 잘 받고

한숨 푹 자고 난 후에야, 라반과 가족들에게 자신이 방문하게 된 이유를 거들먹거리며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는 며칠 더 쉬고 가라는 청을 뿌리치고, 다음날 아침 바로 길을

떠나 아브라함에게 돌아옵니다. 기쁜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주인을 위해서요. 그에게는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리브가를 데리고 주인에게 돌아가서 모든 결과를 보고하기

전까지는 요. 그러니 쉴 틈이 없었던 것이지요.

 

지난 일년간 저는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참석해야 할 모임도 많고, 담당 사역부서 외에

해야할 일들. 제일 바쁜 날이 금요일 토요일 주일 입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면 회사에 가서

좀 쉬다가, 수요일이면 다시 시작됩니다. 한 일도 없는 데 바쁘기만 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슬슬 게을러집니다. 이렇게 바쁘니 이런저런 일들은 좀 소홀히 해도 되겠지!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말씀 묵상/ 기도? 좀 줄여도 괜찮은 거 아닌가!

 

올 해 저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성경을 완독하고 있는 데, 전 그 대상에서 제외된 것처럼

지내고 있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물리적인 바쁨이 영적인 게으름에 이르게 함을

절실히 보게 됩니다. 그제서야 정신차리고 보니 벌써 5 월초였습니다. 다른 분들은

신년초부터 성경을 읽고 계실 텐데, 과연 난 연말까지 마칠 수 있을까? 그냥 관둘까 하다가,

어느 선교사님께서는 10일정도 시간을 내어 성경을 속독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10일 동안 성경을 속독할 경우 몇번이나 읽을 수 있을까요? 하루 종일 읽으면 한

? 그런데 이 분은 4번 읽으신다고 합니다. 성경 전체가 이미 머리속에 있으니 가능할

것입니다. 저도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10일 시간을 내기는 어려우니,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읽어 보기로. 그런데 이 짜투리 시간을 모으니 예상한 것 보다 많았습니다.

먹기전에, 먹고나서, 아침에 일어나서, 집에 와서 잠시, 컴퓨터와 티비 보던 시간을 모으니

정말 하루의 십일조에 가까운 시간이 모아지더군요. ! 나의 삶 속에 이렇게 많은 시간의

쓰레기가 있었구나. 이 얼마나 낭비인가. 데살로니가전서 5 장에 무질서한 사람을

훈계하라고 했는데, 무질서함은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은 영적 쓰레기를 배출합니다. 저는

2개월 반만에 완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목장 식구로서, 목자 목녀로, 그리고 집사/ 장로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시기 위해 주신 일, 즉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발견하고

사명에 충실한 삶이 관리인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주로 듣는 질문은, ‘그럼 나의 사명이

뭔가요? 그 사명 어떻게 확인하나요?’입니다. 여러분,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면, 쉽게

찾아 집니다. 아내를 위해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세요,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 그들을

이해하려고 해 보세요, 목장 모임에 단 한번도 빠지지 마세요, 목자 목녀가 무엇을 부탁하면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해 보세요, 교회를 위해 적어도 한가지 사역을 510년 꾸준히 해

보세요그 안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우리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지 않고 두드리지

않는 데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 삶의 능력이 되고 소망이 되겠습니까!

 

3. 준비되어 있다. 관리인의 태도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세번째 태도는 주인이 부를 때를 대비해 항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은 누구시고, 또 하늘나라는 어떤 곳인지를 쉽게 설명하시기

위해 비유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천국을 준비하는 삶을 살으라고 하시면서, 비유를 드신

누가복음 16 장의 불의한 청지기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어느 부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있었는 데, 그가 재산을 낭비하자 주인이 돌아와서

그 청지기를 해고하게 됩니다. 그 청지기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이 이젠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될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그동안 주인의 돈으로 빚은 준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빚 문서를

조작해 반으로 탕감해 주겠다고 제안 합니다. 나중에 자신을 잘 대해 달라고 부탁하면서요.

그런데 그 주인은 이 얘기를 듣고, 슬기롭게 대처했다고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합니다.

 

이 예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래서 불의한 청지기를 본받으라는 건지! 아님, 나의

유익을 위해 남의 돈을 낭비해도 된다는 건지! 그렇치 않을 것이 분명한 데, 예수님은 이

이상야릇한 말씀으로 듣는 사람을 혼동하게 하십니다. 또 계속해서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라고 하시며,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고, 천국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하십니다. 불의한 재물에 충실하지 못하면, 참된 것도

맡기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 불의한 재물에 충실하여 영원한 천국의 삶을 준비하라는 건 또

무슨 뜻인지.!

 

예수님의 여러 비유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는 예를 들었기에 듣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누구에게 말씀하고 계신지,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이제 막 회개한 세리와 죄인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신입니다.) 너희가 구원받은 것은 단 한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하나님의 간절함의 결과이고(15:1-7 잃은 양의 비유), 돌아 온 탕자를 맨 발로 뛰어가

안으시는 그분의 크신 사랑 안에 거하게 됨에 감사하여라(15:11-32). 그리고 이젠

하나님의 자녀, 즉 빛의 자녀답게 살라고 이 예화를 드신 것입니다(16:1-13).

그런데 이 불의한 청지기는 바로 예수님을 믿기 전 세리와 죄인들의 삶이었습니다. 세금을

포탈하고 약한 자들을 억압해온 자신들의 과거를 머리속에 떠올리며, 이젠 나도 새롭게

살아야지 다짐하게 만드는 예화입니다. 그런데 청중속에서 듣고 있던 돈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은 비웃었다고 합니다(16:14-18). 자신들은 경건한 삶과 재물은 서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불의한 재물로 천국을 준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예화(16:19-31)를 이어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불의한 재물은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빛의 자녀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하늘나라를 어떻게 준비 하느냐와 직결된다는 것이죠.

하물려 불의한 청지기 마저도 자신이 궁핍해 질 때를 준비하고자 하는 데, 너희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 지식, 권리, 경험 등을 지금 어디에 쓰고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내가 사는 집, 더 넓은 곳으로, 더 좋은 동네로, 마음이 가 있는 저에게,

예수님은 그 집에서 뭘 하고 있느냐, 그게 하늘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이는 세상의 재물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고, 그 재물을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하라는 것 입니다. 세상의 재물을 물질로만 한정할 수 없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쓰던

시간을 줄여,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방문하거나 교회 행사에 봉사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쌓은 지식을, 돈이 없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교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 바로

여러분들이 목장, 교회, 일터에서 섬기고 계신 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천국을 준비하는

삶을 살고 계신 것 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신실한 청지기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날 사용하실 수 있도록 영적 분별력을 기르고, 그 부르심에 순종할 때 필요한

희생의 준비, 등등. 하나님이 날 사용하시기를 간구하고, 또 쓰임 받고자 기대하고, 순종을

결단하기는 거,.... 어쩌면 이거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만치 않은 것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결단하는 것, 이는 상당한 자존심의 포기와 엄청난 자아를 내려 놓치

않으면 쉽지 않습니다. ‘네 저 여기 있습니다. 절 써주세요라고 하나님께는 수도 없이 결단

하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동료나 리더인 목자, 사역팀장, 집사/장로, 목사님의 요청에 제가

이렇게 쉽게 반응할까요?

 

한국에 있는 울산 다운공동체 교회의 박종국 목사님께서 어느 비디오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리기 만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부리기 만만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부리기 만만한

사람이 되는 게 숙제인데, 만만한 사람이기 보다는, 불편한 사람이 되어 가는 저를 봅니다.

그래서 오늘도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누구나 필요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

<부담없이 무슨 일이든 맡길 수 있는 사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이 쓸모없는 자아를 쳐 죽이도록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선, 선한 관리인이 되어야 하는 데, 이 때 요구되는

자세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인식하고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에

집중하며, 천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희생이 있는 섬기는

입니다.

마가 10:42-45 “43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44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이웃/ VIP와 나눌 때 그들이 관심을 갖게 되지만, 그 안에 희생이

없으면 그들이 감사는 하지만, 감동받지는 않습니다. 희생이 없는 섬김은 사회봉사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희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맞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물질과 시간을 희생하여 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춰서는 안됩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는기도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나와 가족 이외에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이 기도를 통해서 이고, 믿지 않는 영혼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갖을 수 있는 것도 이 기도의

희생을 통해 가능합니다. 내 자신이 처해 있는 어려움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의 영적인 성숙을 위한 간절한 기도이기에 희생이 됩니다.

 

섬김의 삶을 살다보면,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희생도 있습니다.

캔사스 시티Chiefs Football 경기 관람, 혹은 골프와 같은 취미 활동 등일 수 있지요. 그런데, 가족의 희생도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건너온 것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되어 목장을 매주 인도하다 보니, 가족여행은 가 본적이 없습니다.

주로 목장 식구와 같이 다녔고, 목장 식구들이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하였습니다. 이민

1 세대로서 정착하는 데 저의 경우는 10년이 걸리더군요.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 던

아이들을 여름 캠프에 보낼 경제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목장을 쉬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자녀가 희생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저희 교회 목자

목녀님의 자녀들 대부분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서 좋은 학교에 다니고, 사회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희생으로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 절대 손해보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제 개인적인 경우를 보면, 섬김이 희생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의 희생입니다. 단순히 기분이 좋거나 우울해 지거나, 혹은 평안하거나 조바심 내는

그런 감정 이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주체할 수 없는 내 속의 감정을 얘기합니다.

내소중한 물질과 시간을 들여 섬겼는데, 오히려 당연하다거나 심지어는 못마땅하게 반응할

! 그 사람이 정말 잘 되었으면 하고 건네 준 말 한마디로 상처받았다고 여기저기 불평하고

다닐 때! 나는 오래동안 기도하고 고민한 끝에 제안한 안건이 한마디로 거절 당할때! 등등.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감정! 어떤 것이 있나요? 분노! 실망! 좌절! 미움! 그런데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인간으로서 거부할 수 없는 당연한 내적반응 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내적 반응을 어떻게 외부로 표현하느냐에, 나 자신과 이웃의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화를 내거나, 그 사람에게 면박을 주고 뒤돌아서 험담 하거나, 심지어는 상대방을

공동체에서 제외시킨다면, 바로 생명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주고,

그렇게 말하는 입장을 이해하려 하고, 내 생각이 과연 옳은 가 다시 기도하고, 내 의견이

관철될 지라도 상대방을 격려하고! 이 희생의 과정을 통해 한 생명이 살아납니다.

<3:12-14>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거룩하고 사랑받는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온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그래서 이 감정의 희생은 교회에서 일을 더 많이 하는 중직자, 리더들에게 더 요구됩니다.

VIP 혹은 이제 막 믿음을 시작한 분들에게 이 희생을 기대하거나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분들은 주님안에서 훈련이 더 필요한 분들입니다. 내 자아를 내려놓고, 그 자리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우고 희생으로 섬길 때, 우리는 순례자의 길을 나설 수 있습니다.

 

맨해탄 한인교회 성도 여러분,

지난 3일간 여러분과 같이 한 시간이 저에게는 꿈만 같았습니다. 이 깨어진 세상속에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 영혼을 구원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지도록 우리가 붙잡아야 할

정신과 원칙을 같이 나눴습니다. 두서없는 말, 그리고 휴스턴과는 다른 지역적인

특성이기에, 엉뚱한 얘기임에도 경청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저는 휴스턴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힘을 다해, 다시

만났을 때, 서로 사역의 열매를 얘기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순간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우리에게 요구 되는 것은 하나님의 관리인이 되는 것입니다.

선한 관리인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야

되는 지, 우리 삶의 현장을 점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선한 관리인의 삶의 목적은

섬김에 있고, 생명을 살리는 섬김에는 희생이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혹시 이

시간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있으신 분들은 나눠드린 간지의 헌신란에 꼭

적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희생이 부족하였습니다. 혹은 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넘어트리지는 않았는지, 혹은 주님이 허락하신 물질/시간/재능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옛 속성을 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내 자아가 있다면, 먼저

하나님께 회개하시고, 내가 이런 희생을 해보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시는 한 주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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