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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진정성

 

(11:1)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11:2)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11: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은 삶이 바빠서 기도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못하는 것 같습니다. 생활도 바쁘고 마음도 바쁘고 그 결과 성도님들이 영적인 힘을 잃어가고 있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지켜보면서 예수님의 사역에서 능력이 나타나는 이유를 예수님의 기도생활에 있다고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는 기도를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17장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은 기도하시는 중에 아버지란 호칭을 47번이나 사용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기도할 때 아버지여 라고 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기도를 참 많이 하셨습니다. 기도가 필요하지 않으실 것같은 예수님이 오히려 누구보다 더 많이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사역초기에는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매일 한적한 곳을 찾아가셔서 기도하셨고, 52어 기적후에는 밤에 산으로 가셔서 산기도를 하셨고,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는 밤을 새우면서 철야기도도 하셨습니다. 우리나 제자들은 부족하니 기도하여 능력을 받아야 하겠기에 기도해야 하지만 예수님은 전능하신데 왜 기도하셨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주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말씀하신 호칭 아버지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정의는 아버지와 자녀간의 대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에게 같이 대화하자고 말씀하십니다.

40:7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묵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

하나님은 대화를 위하여 우리를 부르기도 하십니다. 3:4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니, 또 사무엘을 부르셨읍니다(삼상 3:10)

그리고는 말씀하시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10:27)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할을 하다보면 대화가 참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 여럿이 이야기하는 중에 한 사람이 문을 세차게 닫고 나간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서 그가 화가 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동도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행동이 말을 한다는 것은 행동이 어떤 의미를 전달해 준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언어적 표현은 분명히 많은 의미를 전달하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로 화가 나서 문을 닫고 나간 사람의 경우는 우리는 그의 행동을 통해 화가 난 사실은 알 수 있지만 그가 왜 화가 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왜?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그래서 서로간에 대화가 필요합니다.

만일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분명한 언어로 설명해 주지 아니하면 우리는 내 나름대로 짐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짐작이란 상상하는 것이기에 정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관계속에서 대화가 단절되면 오해가 있게 됩니다. 오해가 계속되면 관계는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대화란 서로가 서로에게 왜를 설명하고 묻고 듣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왜 화가 낫고 왜 슬픈지를 말하는 것이 대화요 그 대답을 경청해 주는 것이 바로 대화입니다. 그 왜?를 알기전에는 평가하지 않고 판단하지않고 평가와 판단을 유보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결국 상대방으로부터 왜를 듣을려고 하지않고 자기의 판단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는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오해가 생기고 거기에서부터 갈등이 시작됩니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 왜를 주고받으면 많은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왜를 알고 나면 용서하기가 훨신 쉬워집니다. 이해하고나면 서로가 부드러워집니다. 그러기에 오해를 풀고 서로 이해하는 관계를 맺을려면 왜를 말하고 들을려는 섬세함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위하여 반드시 가져야 하는 인간관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될려면 먼저 원활한 의사소통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의사소통의 기본은 대화입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과도 동시에 개별적으로 만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어느 누구 하나 도와 줄 사람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기대어 빌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것도 모르는 것도, 못하실 일도 없는 하나님이 그 대상이니 이를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했고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읍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하나님과 교통하는 통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대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대화를 잘 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럴러면 먼저 듣고자 해야 합니다.

기도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 삶에 이루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기도의 목적이 나의 영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 뭔가를 달라고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잠간 잠간~ 기도하여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일은 좌우지간 모든 통로를 열어놓고 음성을 들을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과연 어떤 식으로 들려오고 있는가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우리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들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내적 음성으로 들리는 것이 95% 이상입니다.

 

음성을 들을 때는 한 가지를 가지고 집중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왜 고생을 하고 있습니까? 계속해서 하나님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면서 지속적으로 질문을 해야 합니다. 간절하고도 애절하게 아뢰어야 합니다.

 

지난주간 이찬복장로님 부인을 통하여 이런 간증을 들었습니다. 미국으로 온후 자녀들 다 키우고 15년간 혼자 살아가는데 무척 외로웠습니다. 주변에 어던 혼자 사시던 분은 이곳 저곳을 다니며 배우자를 찾았는데 마땅치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은 하나님께 재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집사님은 소리높여 기도도 못하고 속으로만 기도하시는 분이셨는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귀에 들리도록 서두르지 말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원하시던 장로님을 만나 재혼을 하셔서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들을려고하면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에 있어서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의 한밤중에 여행 중인 사람이 한 친구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뜨거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종종 밤에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늦은 밤에 찾아온 친구는 약속되었거나 예상했던 방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주인은 방문한 친구에게 대접할 것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손님이 방문했을 때 풍족하게 대접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집에는 먹을 게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매일 그날의 필요에 따라 먹을 것을 준비했기 때문에 밤중에 찾아온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음식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얼마나 난감한 상황입니까?

그 때에 이웃집을 생각했습니다. 그 이웃집 친구에게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그 친구 집에 가서 음식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고 있을 때이기에 친구 집에 가서 음식을 빌리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방에 모든 식구들이 다 같이 잤습니다. 늦은 시간에 누군가를 부르는 것은 그 집안사람 모두를 깨우는 일입니다. 분명 친구의 집에 가서 음식을 얻으려면 이 모든 일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집주인은 친구를 찾아가서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그에게 떡 세 덩이를 빌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해야 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립니다. 그때 그 이웃집 사람은 할 수 없이 일어나 음식을 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 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그 요구대로 주리라”(8) 즉 기도는 간청하는 것이다 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가 하나님께 합당하면 즉시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고 우리가 간청해야 기도를 응답하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주님이 간청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 기도의 피상성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너무나 피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하면 기도를 드리기는 하지만 응답이 되면 고맙고 응답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라고 하는 우리의 기도에 진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에서 응답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도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간청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은 간청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9-10)

 

여기 9절에 세 번이나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모두 현재형으로 반복해서 이 일을 해야함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계속 구해야 하며, 계속 찾아야 하며, 계속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를 앞에두신 시점인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드릴 때 흐르는 땀이 피가 되도록 간절히 간청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에서 진정성이 나타나는 간청하는 기도를 할려면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신뢰하는 아버지와같이 여기는 사람은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많이 배운사람, 많이 가진 사람, 능력이 많은 사람, 세상지위가 높은 사람이 가장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에게 간청하는 것입니다. 굶어 죽으면 죽었지 남에게 구차하게 간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내가 가장 신뢰하는 아버지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비록 내가 배웠던, 가졌던, 사회적인 지위가 높든 상관없이 나의 필요가 있을때는 그 부자 아버지앞에, 능력많으시고 한없이 자비로우신,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앞에 부끄러움없이 간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추수감사절날 부흥상회에서 오랫동안 교회를 나오시지 않는 한 교우를 만났습니다. 이분은 저를 만나더니 기뻐하시며 헌금을 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주보와 설교요약을 보내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교우들은 결석했을 때는 교회 주보와 설교요약을 늘 보내드립니다. 이 주보발송을 통해서 결석교우들에게 드리고자 하는 멧세지는 교회가 여러분을 잊지않고 있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 진정한 소원이 있는 사람은 간청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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